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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Audio CODEC(PCM2902)

루시엘 2007. 1. 5. 17:42

계기

2004년 봄에 학교 선배에게 노트북과 함께 쓸 수 있게 만든 헤드폰 앰프(SHA, Sol Headphone Amp)를 선물한 적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때 받은 평가는 "노트북 내장 사운드의 출력만으로도 음량확보에는 충분하고 근본적인 음질의 한계 때문에 굳이 앰프를 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였다. 그때 선배가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차라리 노트북에서 쓸 수 있는 고음질의 사운드 카드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헤드폰 앰프도 추가해서 말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 생각한 것이 USB DAC이었다. 하지만 일단 중요 부품을 구하기가 어렵고, 구한다 하더라도 납땜이 수월하지 않은 SMD 부품이 있으며, 무엇보다 시중에 비슷한 컨셉의 제품-오디오트랙의 옵토플레이 등-이 적당한 가격에 나와있다는 것 때문에 만들기도 어렵고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답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 역시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에 부품만 구할 수 있다면 한 번 생각은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만 하고 넘어갔는데 그해 9월 즈음 선배가 필요한 부품을 구해주었다. 그 바람에 결국 앞서 내렸던 이성적인 판단을 외면한 채 USB Audio CODEC을 만들게 되었다.

완성한 USB Audio CODEC(PCM2902)



회로

회로는 Ukram Data의 USB DAC 프로젝트인 PCM2902 USB DAC/ADC에 소개된 것을 사용했다. 내가 처음으로 USB DAC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곳이기도 하고, 상당히 간결한(?) 회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데이터시트의 기본 회로도


Ukram Data의 PCM2902 USB DAC/ADC 회로

USB 코덱칩인 PCM2902의 데이터시트의 기본 회로와 큰 차이는 없으나 시그널(아날로그) 그라운드와 USB(디지털) 그라운드를 격리(isolation) 시켰고, LPF(Low Pass Filter)나 앰프가 생략되었다.

PC와 사운드 카드의 그라운드를 격리시킴으로써 그라운드간 전위차에 의해 발생하는 노이즈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PCM2902의 아날로그 부와 디지털 부사이에는 약 10 mV의 전위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10옴 저항을 사용해 격리시켜준다.


제작

당초의 생각은 작고 가볍게-휴대하기 편하게 만들자였는데 적당한 케이스를 찾기 어려워 실비아 케이스를 사용하기로 했다.

입출력 단자 및 전원스위치와 LED


코덱이라 입/출력이 지원되기 때문에 아날로그 입/출력 스테레오 단자를 갖추고, 디지털 입/출력은 사용빈도가 낮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단자에 점퍼로 입/출력을 설정할 수 있게 하고, 휴대용으로 쓸 예정인 만큼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전원 온/오프 스위치를 넣었다.

내부


남는 공간에는 전원 보강용으로 전해 캐패시터와 세라믹, 필름 캐패시터를 추가했다.

부품은 구하기 쉬운 일반적인 것이며, 가지고 있던 것만을 사용했는데, 그 때문에 12Mhz 발진소자를 크리스탈로 하지 못하고 아쉽게도 크리스탈보다 정밀도가 떨어지는 세라믹 진동자로 했다. 물론 세라믹 진동자의 그런 단점을 감수한 까닭은 세라믹 진동자에 대한 호기심이 낮은 정밀도로 인한 꺼려짐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내부, 자작한 PCM2902용 변환기판


PCM2902는 SMD 칩이라 만능기판에 바로 부착하기 어려워 SME 교역의 특수 코팅 배선용 점프 와이어를 이용해 변환기판을 직접 만들었다. 칩의 핀 간격이 워낙 좁아서 변환기판 만들다가 몇 개의 칩이 희생되었다.

배선작업

최대한 점퍼를 줄이고자 했으나 3개의 점퍼는 어쩔 수 없었다.(이상하게 배선도 그리면서 점퍼를 줄이는 배치를 구상하는데 열중하게 된다.^^;;)

여유 있을 때마다 조금씩 그리고 느긋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실체 배선도 그리는 기간을 포함하여 케이스 완성까지 한 달여거 걸렸다.


감상

전원 온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테스트하는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출력이 너무 약하다!"였다. USB DAC에 바로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연결하면 소리가 찢어지고 갈라지는 것이...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다. USB 버스 파워(5V)를 3.3V로 정전압화해서 작동시켰기 때문에 출력에 많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망연자실해지는 순간이었다. 당황한 마음을 추스리고 아무 앰프나 연결해서 사용해보니까 그제서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왔다.

음질은 옵토플레이를 비교 대상으로 놓았을 때 그만큼 선명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깔끔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이 없어서 듣기에는 더 편하고 좋은 것 같았다.

그 외에 옵토보다 더 안정적으로 동작한는 것이 기특했다. 옵토의 경우 USB 컨트롤러를 가리기도 하고 굉음이 나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 USB 코덱은 2년이 넘는 기간동안 별 탈 없이 작동되고 있다.

약간 기대를 했던 아날로그 입력(ADC)은 녹음하면서 모니터링이 되지않아 괜히 만들었다 싶을 정도로 불편했다.

처음에는 완성하고 나니까 뿌듯하긴 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치가 충족되지 않아 괜한 고생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만드는 재미가 있었으니 그것에 의미를 둔다. 만약 다음에 또 USB DAC을 만들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출력을 보강하기 위해 꼭 헤드폰 앰프나 LPF를 추가하기로 다짐하며 안타까움을 달랬다.


휴대용으로 계획했지만 출력이 약해서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그냥 거치형(?) 메인 사운드카드로 쓰고 있다. 프리와 파워앰프와 연결해서 쓰면 출력이 약한 점을 신경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케이스가 실비아라는 점이 좀 아쉬운데, 이렇게 거치형으로 쓸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다른 케이스를 사용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