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빛 소리결을 지닌 진공관 하이브리드 헤드폰 앰프 SHHA
에메랄드빛 소리결을 지닌 진공관 하이브리드 헤드폰 앰프
- SHHA(Sijosae Hybrid Headphone Amp) -
진공관과의 첫만남
내가 처음 헤프폰 앰프 자작이란 취미를 가졌을 때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진공관만큼은 손대지 말자!" 였다. 진공관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 같이 보이지만 실은 너무 자작에 심취하지는 말자는 자기절제적인 맥락에서 했던 다짐이었다. 그것을 보면 지나친 취미와 지속가능한 취미 사이의 경계를 진공관으로 잡았던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그 다짐으로 인해 진공관으부터의 많은 유혹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굳건했던 다짐이 무너지고 말았는데 진공관 하이브리드 앰프 때문이었다. 물론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하스에서 있었던 진공관 하이브리드 앰프의 공동제작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귀차니즘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는 말처럼 공동제작이라는 계기가 없었다면 아마도 계속해서 그 다짐을 지키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있었던 공동제작 PCB의 편의성과 완성도의 맛을 본 뒤라 만능기판에 작업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렇게 진공관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SHHA(Sijosae Hybrid Headphone Amp)
SHHA는 시조새 하이브리드 헤드폰 앰프의 약자이다. 시조새는 하스의 신정섭님의 닉네임으로, 그 분이 제안한 하이브리드 앰프 회로를 바탕으로 김상록님이 진공관 플레이트 전압을 높히고 그에 맞게 전원부를 추가하여 완성한 것이다.
SHHA 회로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가 이해한 범위 안에서 회로의 기본구성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면 SHHA는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방식의 앰프처럼 진공관으로 전압을 증폭하고, 모스펫으로 전류를 증폭(A급 증폭)하는 방식이다.
모스펫을 이용한 증폭부는 Szekeres 앰프의 증폭부와 거의 같지만 24V의 전압에서 6.3V만큼을 진공관의 히터로 보내고 그 나머지를 Szekeres에 공급하여 전력효율을 높인 것이 다른 하이브리앰프와의 차이점이다.
전원부는 구보다 전원부로 구성되어있다. 구보다 전원부는 빠르고 노이즈가 적은 정전압 회로로 오디오용으로 평가가 좋다. 모스펫과 진공관 히터용으로 24V를 만들고, 진공관 플레이트로 충분한 전압을 공급하기 위해서 35V 단파 2개를 묶어 70V를 만드는 식이다. 그래서 총 3개의 세미 구보다 전원부가 들어간다.
사용한 부품
앰프를 만들기 위해 부품을 구할 때마다 느끼지만 욕심을 컨트롤하는 것이 좀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처음 헤드폰 앰프를 자작했을 때 선배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지금은 일반적인 부품으로 '충분히' 만족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나중에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약간의 차이에 더 집착하다보면 거기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금 만족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것으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위의 내용이었는데 이 이야기를 되새겨 보면서 자제하고 적당히 타협을 보곤 한다. 물론 호기심은 누를 수 없는 것이고,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적당한' 선이 어느 정도인지인데 아직 자신 있게 확실히 선을 긋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품은 가지고 있거나 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좋은 것을 사용하고자 했다.
3개의 구보다 전원부
증폭부쪽은 모스펫으로 IR의 IRF610, 정전류용 레귤레이터로 LM317을, 출력 캐패시터로 파나소닉 FM 1000uF/50V와 BC 1000uF/30V, 스피커넷의 블랙캡 골드 0.1uF를, 입력 캐패시터로 스피커넷의 블랙캡 4.7uF을, 6922 진공관으로 튜브4U에서 구입한 소브텍과 필립스 6922관을, 볼륨으로 알프스 블루벨벳 10K(클릭형)를 사용했다.
신호선재는 벨덴 4심선을 썼고, 방열판의 경우 열이 심하게 나는 24V쪽만 50mm 방열판을 나머지는 25mm짜리를, 저항은 모두 국산 금속피막 저항을 썼다.
만들기
다이오드 장착과 케이스 뒷판 만들기를 제외하면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이오드 장착의 경우 구입한 다이오드가 액시얼 타일이라 세워서 장착해야겠구나 생각했는데, 하스에서 박은서님이 올린 사진을 보고 눕혀서 장착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이오드 다리를 꽉 접어서 PCB에 우겨넣었다. 또 심리적인 안정감을 위해서 노이즈 흡수용으로 적층세라믹 캐패시터 0.1uF을 쇼트키에 같이 연결해주었다.
창 너머 보이는 아련한 진공관 불빛
1T의 알루미늄 판재 |
AC인렛 홀 |
흠집의 압박 |
AC 인렛 장착 |
프레임과 결합! |
도색 완료 |
완성 후 뒷모습 |
선물로 받은 불량프레임 덕분에 계획을 전면 수정해서 없는 뒷판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조각집에 맡길 수도 있겠지만 비록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만드는 재미(?)를 추구하기로 했다. 엘레파츠에서 알루미늄 1T 판재를 구입하여 케이스에 맞게 썰고, 뚫고, 갈아서 프레임에 맞게 만들었다. 판재의 두께가 얇고, 재질이 무픈 편이라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프레임을 선물로 받은 기쁨 때문인지 케이스 작업의 난관 중 하나인 AC인렛 홀 가공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멈췄다면 좋았을 텐데 가공할 때 생긴 흠집을 제거한다고 사포질하다가 도중에 머리카락이 사포에 떨어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밀었다가 무수한 흠집을 만들어 버렸다. 그 뒤 어울리는 색의 카페인트로 도색하여 마무리했다.
검은색으로 도색한 노브
발열의 경우 손으로 방열판을 만져봤을 때 증폭부는 약간 뜨겁다 정도이고, 전원부의 35V쪽은 열이 거의 없는데 비해 24V쪽은 잠깐 만지기도 어려울 정도로 살벌한 발열이 났다. 하스에서 박완순님이 공동구매해준 50mm 높이의 특급 방열판인데도 정전압부에서의 전압강하 폭이 워낙 크다 보니까 발열이 심한 것 같았다.
그라운드 루프 브레이커 |
트랜스 고정용 볼트와 연결 |
마이크로 포닉 노이즈
소브텍 6922관 |
소브텍 6922관 |
전원 온! |
튜닝
SHHA의 출력 캐패시터는 한 채널에 470uF 2개를 사용하거나 1000uF 1개를 사용한다. 애초에는 오스콘이나 유니콘 470uF/16V 2개을 생각했다가 내압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스의 황용근님이 선뜻 파나소닉 FM 1000uF/35V 캐패시터를 선물해주었다. 가지고 있던 BC 1000uF/35V와 파나소닉 FM을 비교해보다가 더 마음에 드는 파나소닉 FM 캐패시터를 선택했다. 덕분에 캐패시터 2개의 빈공간이 생겼는데 좀 오래 듣다보니 고역에서 약간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그 자리를 이용해 튜닝을 해보기로 했다.
출력캡은 파나소닉 FM 1000uF/35V |
튜닝용 블랙캡 골드 0.1uF |
밸런스 조절의 경우 저가형 중국산 테스터의 한계 때문에 좀 어려움을 겪었다. 자주 듣는 음량으로 볼륨을 맞춰놓고 테스트하니까 아무리 트리머를 조절해도 변동을 측정할 수 없었는데, 신호 생성기의 음량 최대, 사운드 카드의 볼륨 최대, SHHA의 볼륨 최대 상태에서 측정하니까 구분할 수 있는 값이 표시되었다. 그렇게 해도 테스터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기는 힘들어 최후의 판단은 두 귀로 했지만 제대로 맞추기 어려웠는데 귀가 민감한 동생에게 오른쪽이 좀 크다는 지적을 받고 말았다.
나중에 FLUKE의 디지털 멀티미터(이하 DMM) 8050A을 구하게 되어 로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예전에 만들었던 SHHA의 좌우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었다. 전에 사용했던 DMM에선 최소단위가 200V 여서 제대로 된 측정이 어려웠는데, 8050A는 AC 전압 측정 범위가 상당히 세밀하게 나눠져 있어 2V로 맞추고 측정하여 양쪽을 거의 비슷한 레벨로 맞출 수 있었다. 밸런스 조정 뒤에는 음악에 대한 몰입도가 확실히 전보다 더 높아졌다.
에메랄드빛 소리결
에메랄드 빛을 감상하는 재미도...
테스트해봐야겠다는 의무감으로 한동안 듣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소리를 느껴보겠노라고 마음을 먹고 비교를 해지만 실은 그것이 맥락과 동떨어진 비교였다는 생각이었다. 모니터 장비로 주로 음악을 듣고 청아한 느낌의 길모어 앰프(G-2)를 레퍼런스로 놓고 있으면서 SHHA가 그런 성향을 갖추지 못함을 지적하려고 했으니 어떤 내용이 될지 뻔한 일이었던 것이다.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서 보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선호가 갈릴 수 있지만 어느 것이 모자람을 이야기하며 좋다 나쁘다 구분하는 것은 너무 뻔하기 때문에 재미없는 일이다. 의미 있는 비교는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이해라는 말은 다르게 된 원인을 밝혀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름의 양상을 파악해보겠다는 의미에서 사용했다.
에메랄드 빛이 연출하는 독특한 분위기
SHHA로 진공관에 대해 갖고 있던 막연한 동경이나 호기심이 어느정도 충족된 것 같다. ^^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공관이 내 취미의 범주에 들어왔다는 것이 걱정된다. 아마 SHHA로 진공관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공감이 갈 것이다.
SHHA 제작 시 참고링크: 하스 박은서님의 "[글모음] SHHA 제작기"